요즘 각광 받는 신종 직업 중에 ‘바리스타(barrista)’라는 것이 있다. 사전을 보면 바리스타는 ‘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돼 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바리스타는 좋은 원두를 선택하고 커피 머신을 완벽하게 활용하여 고객 입맛에 최대한의 만족을 주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최근 바리스타 열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요즘 웬만한 커피전문점 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걸어놓지 않은 곳이 없고 고학력 바리스타도 늘어나고 있다. 흔히 ‘다방 커피’로 불리는 인스턴트 커피가 득세해온 한국의 커피 문화가 바리스타의 대거 등장으로 격조 높게 바뀌고 있는 게 요즘 상황이다.

바리스타가 뜨면서 국내에서 산파역을 맡은 인물이 궁금해진다. ‘한국 바리스타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허경택(許京澤·56) 상지영서대 관광조리음료과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커피 때문에 분주한 삶을 살았다. “2005년 9월 커피 관계자들과 뜻을 모아 한국커피교육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민간자격증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만들어 2005년 11월에는 ‘제1회 바리스타 자격시험’을 치렀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시험은 벌써 4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응시인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첫회 182명이 응시했던 것이 4회에는 1391명으로 6.6배나 늘었다. 한국커피교육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 교수는 바리스타 자격증 제도를 만들었다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외국에도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냐고 물어보자 뜻밖에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미국 등 커피 선진국에도 바리스타는 있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은 없다”고 대답했다. “예전부터 커피를 마셔온 이들 나라에는 커피를 추출하는 전문가가 많고 자연스레 이들을 ‘바리스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커피 선진국에 없는 자격증 제도를 왜 만들었냐”고 의문이 생길 법하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커피를 마셔온 서양에 비해 커피 역사가 짧습니다. 그런데다 원두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죠. 이런 상황에서 커피 문화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커피 전문가인 바리스타 자격증 제도를 도입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자격증 제도가 발달하고 자격증을 좋아하는 한국 문화도 바리스타 자격증 제도를 도입한 한 가지 이유가 됐다. 한국인의 ‘쯩’ 선호도는 세계적으로 봐도 유별난 면이 있다.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중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투영된 결과이리라.

그는 바리스타를 우리 사회에 조기정착시키기 위해 자격증을 만들었지만 자격증 취득은 아무나 할 수 없도록 엄정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선 한국커피교육협의회가 규정하는 시설을 갖춘 곳에서 교육을 받아야 시험을 볼 수 있다. “추출기 2대, 배전기(볶는 기계) 1대가 있어야 하고 교육공간이 있어야 하며 대표자와 강사가 커피 교육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흔히 ‘커피 아카데미’로 불리는 사설학원 중 이런 기준을 통과한 33곳의 수강생만 시험을 볼 수 있다.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대학 8곳이 협회 회원이다. 이들 대학도 커피 관련 과목을 2개 과목 이상 개설해야 한다. “커피학 개론을 1주일에 3시간 이상, 커피 추출이나 배전을 1주일에 4시간 이상 가르쳐야 합니다.”

시험 수준도 만만찮다. 실기시험의 경우 7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인데 수험생은 10분 내로 에스프레소 커피 4잔과 카푸치노 커피 4잔을 추출하고 마무리까지 해야 한다. 커피 가루 7g을 기계에 넣어서 에스프레소 커피 20~30㎖ 한 잔을 추출하려면 추출시간만 20~30초가 걸린다. 또 커피 가루를 평평하게 다져넣는 데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시간 요건만 충족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평가위원의 관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커피를 맛있게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바리스타는 기술적인 숙련도 못지않게 서비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리스타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결국 고객에게 맛있는 커피를 친절하게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한국은 외국과 달리 바리스타에게 매장 전반 관리와 기계 점검까지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 바리스타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그에게 “바리스타가 왜 중요합니까?”하고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강원도 원주와 인근 지역을 예로 들어 실감나게 설명했다. “강원도에서는 원주나 강릉의 커피 문화 수준이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커피를 가르치는 대학이 원주와 강릉에는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죠.”

그는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커피 소비국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인스턴트 커피 비중이 높아 빈약한 편에 속해요.” 그는 “커피는 매니아적 요소가 강한 음료”라며 “바리스타는 고급 커피 문화에 필수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커피 문화를 보급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커피용어집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내로라하는 커피 전문가 10명으로 편집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3000단어 수록을 목표로 오는 8월 무렵 출판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커피 역사가 짧은 탓인지 용어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예를 들면 볶기 전의 커피콩을 뜻하는 말로 생두와 날콩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안 볶은 콩인 생두를 원두라고 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는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커피 전문가이지만 예전에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녹차 전문가였다. 녹차를 많이 마시는 일본에서 6년간 공부했기 때문이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그는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식품가공학과를 나와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 교수는 “맛있는 한 잔의 커피는 삶의 질을 높여준다”라며 “훌륭한 바리스타를 많이 배출해 한국의 커피 문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